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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영화시대[1]

초창기 영화의 초라한 시작은 요즈음 영화배우들과 연상되어지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최초의 영화는 토마스 에디슨이 개발한 영사기의 작은틈을 단돈 1페니를 내고 보는 것이 었다. 이 영화들은 5초에서 90초 정도의 길이로 에디슨의 최초의 영화 '프레드 오트의 재채기(1891)'처럼 인간생활의 한 단편을 다루거나 파도가 이는 바다를 다룬 '도버해협(1896)'이었다. 에디슨의 영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존 라이스와 메이 어윈의 키스(1896)'로 브로드웨이쇼 '미망인 존스부인'에서 따온 것으로 로맨스 영화의 효시이다.
1900년대 말에 이르러야 영화가 오락으로 자리를 굳혔으며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코미디나 로맨스 혹은 모험물이건간에 무성영화의 성공은 그 의상에 달려있었다. 초창기 의상 디자이너로는 유명한 폴 이리베, 나타샤 람보바, 아드리안 등이 있는데 이들은 당시 상황을 보여 주는 옷이나 역사적인 고증 혹은 환성적인 옷을 만들어냈다.
영화 밖에서 스타들로 인한 실질적인 수익자는 글로리아 스완슨과 폴라 네지리로 이들은 주로 구슬장식이 달린 슬림한 윈피스드레스나 털 장식이 많이 달리고 황홀한 분위기의 모자들, 사치스러운 보석장식들로 의상을 만들어냈다. 이로 인해 이들은 명성을 얻게 되었고 국제적인 오페라 가수나 영화배우들 같이 유명인들의 공식적 모임도 같이하게 되었다.
영화제작의 선두주자로 활약했던 사람은 아마도 가장 뛰어나고 유명했던 사라 번하트였다. 사라 번하트는 대중적인 것을 조금도 싫어하지 않았으며 자신에 관한 풍부한 기사거리와 사진을 제공함으로써 미국인들의 취향을 만족시켰으며 방문한 도시마다 최신 유행스타일의 대사로 대우받았다. 번하트는 파리의 집에서 재능있는 극작가, 시인, 소설가, 배우, 의상디자이너, 보석세공가 등의 동료를 거느리고 그들이 만든 다양한 작품으로 그녀 자신의 과장된 이미지를 만들어내도록 지휘했다.
사라 번하트는 '단 한번의 부도덕'이라는 영화에 출연했는데 자신의 연기를 후세에 남기기 위해 1900년대에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서 그녀의 움직임은 매우 선동적이어서 그녀를 무시무시하게 보이도록 했지만 사라는 영화 만드는 것을 고집했고 새로운 예술형 식을 정복하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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